#1 복잡한 세상, 음악가로 살자 : 복세음살

예비예술인 양지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상명대 피아노 전공이고 올해 졸업한 양지우입니다. 이번에 SEM 부트캠프 복세음살 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mbti는 자주 바뀌긴 하는데 esfj예요. 그리고 K-POP 엄청 엄청 좋아해서 K-POP 곡 연주하는 게 제 취미예요. 제가 하는 음악이 K-POP 만큼의 인기를 누리길 바라고 있어요. 또 컵이나 그릇 모으기,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아요.


Q현재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저는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서 아예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이 되었어요. 소리 듣는 걸 좋아했는데 피아노 학원에서 나는 소리만 들으면 엄마가 저를 아무리 데려가려고 해도 안 갈 만큼 피아노 소리에 강하게 반응했어요. 저는 외동이고, 키우는 반려동물도 없는데 피아노가 항상 변함없이 제 옆에 있는 존재였어요. 그래도 전공을 선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까 고민했는데 피아노 제대로 안 쳐보면 후회가 남을 거 같았어요. 음악 계열은 장애인 특별 전형이 별로 없어서 비장애인들과 경쟁해서 대학 입시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더 어렵고 외로운 길이었고 피아노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서 피아노가 항상 옆에 있어 주었듯, 앞으로는 제가 평생 피아노 옆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아노 전공자로서의 장점은 악기 특성상 독주를 할 일이 많은데 모든 연주 과정을 스스로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도 스스로 끌어가야 하는 만큼 긴장감과 성취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과 거의 모든 악기와 연주를 해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에요. 소나타 전악장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하지만 단점은 사람들의 인식이 모든 악기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소리나는 원리만 보고 쉬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에요. 비전공자나 다른 악기 전공자 중에서도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전공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계속 찾아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예술가가 아닌 사람과, 음악으로 교류했던 경험이 있다면?
A.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시는 시각장애 이용자분들께 피아노를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배우시는 분에 따라 가요나 찬양 등 원하시는 곡을 손에 맞는 반주 패턴으로 바꾸어서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어려워하시면 즉석에서 조금 더 매끄럽게 연주하실 수 있게 바꾸기도 해요. 피아노라는 게 이렇게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구요. 제가 3월부터 가르쳐드린 분이 최근에 레슨을 마무리했는데, 그 분이 피아노로 한 곡 연주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이 분들은 피아노 배우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열정도 있고 연습도 많이 해오시고, 카톡으로 질문도 많이 하세요. 가르쳐드리면서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고 저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Q. SEM부트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저는 장애 음악계에 대한 혼란이 길었어요. 장애 음악계가 보통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예술단 등 단체 중심적으로 운영되고,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에 포함되는 악기가 아니다 보니 단체에 속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이 고민을 하은 언니한테 얘기했더니 언니가 인스타에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이 SEM 부트캠프가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신청서를 봤는데 장애 예술인 체크란부터 인상적이었어요. 또 면접 때 은별 대표님께서 지금까지 장애 예술인 기획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기획자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냐고 질문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았고, 다소 무모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자신 있게 기획자로서의 삶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기서 배우면서 저희가 연주를 하는 데까지 필요한 프로세스가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저희에게 무대를 제공해주는 분들께 감사함도 많이 느꼈구요. 그래서 저도 장애인 기획자로서 도움받을 것도 많겠지만 계속 배워보고 싶어요.

 
Q. SEM부트캠프에서 인상적이었던 사람 혹은 경험(순간)들 

A. 오늘의 음악가 인터뷰 콘텐츠 기획하길 참 잘했다 싶어요. 시각장애가 있으니 이 부트캠프에 모이신 분들이 누구신지 파악하기 어려웠어요. 또 저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타 그룹 분들도 궁금해서 음악가로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어요. 다른 분들도 인터뷰 콘텐츠에 대해 긍정적이시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어서 너무 뿌듯합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정말 많고,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돼서 기뻐요. 또 인터뷰 하신 분들도 질문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세달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SEM 부트캠프에서 배우고 얻어가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고 각자의 활동 방향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저는 현재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인턴을 하고 있어서 교육생과 강사 간 소통 지원, 기획서 및 평가서 작성 등 준 사회복지사처럼 살고 있어요. 그래서 더 예술인으로서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없는데 인터뷰하고 부트캠프 모임 참여하면서 저에게도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확인하고 찾아가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좋아요.


Q. 지우님에게 SEM(Socially Engaged Musician)이란 어떤 음악가인가요? (사회참여적음악가라는 키워드에 있어서 원래 가졌던 생각과 변화)
A. 원래 가졌던 생각은 일단 제 몫이라도 열심히 하자는 거였어요. 우선 제 것을 잘하자는 생각이 강했죠. 저 혼자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합주를 하거나 반주를 할 때 제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음악의 사회적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보수적 시선도 많고 예술하는 사람은 이럴 것이다하는 이미지도 많은 것 같아요. 은별 대표님을 보면 음악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이시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예술 기획자로서의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우연히 지인 연주회에 갔는데 정말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은별 대표님의 연주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봤던 연주 중에 제일 좋았던 피아노 소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SEM 부트캠프에서 함께 하면서 은별 대표님은 물론이고, 복세음살 팀원 분들의 음악 활동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음악을 하는 OOO가 좋은 사람' 이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인데 알고 보니 음악하는 사람이더라'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사회참여적음악가로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A.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도 너무 고생해서 하면 다 티가 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 점자로 악보를 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어려움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컵으로 조금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비장애인들은 컵이 컵으로 보이잖아요. 저희는 이게 다 풀어진 전개도처럼 보여요. 점자가 오선보처럼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줄밖에 출력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풀어서 적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오선지를 다 풀어서 컵이 쪼개져 있는 전개도가 되는데, 저는 컵 모양을 만드는 데까지만 해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거죠. 특히 피아노는 화음이 많은데 화음 기호로 적혀있는 음들을 모두 계산해서 하나의 화음을 완성시켜야 해요. 또 오른손, 왼손 계산법도 전혀 달라서 만약 화음이 도미솔도면 왼손은 도-3도-5도-8도해서 도미솔도인데, 오른손은 위에서부터 도-4도-6도-8도해서 도미솔도예요. 음 개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어렵지만, 악보를 보면서 연주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암보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매끄러운 연주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저는 저처럼 음악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각장애 예술인들, 더 나아가 비장애인 예술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면서 ‘음악’이라는 것에 접근성을 낮추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Q. 음악 활동을 하면서 슬럼프 시기와 극복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제게 슬럼프가 크게 찾아온 건 대학교 1학년 1학기였어요. 특수학교에 다니다가 비장애인들이랑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고에서 온 동기들, 선배들 위클리 듣고 자신감이 줄어들었죠. 그러다 실기 날 동기들이 긴장해서 악보가 헷갈렸는지 많이 틀리고 ‘지우야 넌 좋겠다. 그럴 일 없겠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때 신나서 악보 다 외웠으면 끝난거지하는 마음으로 음만 치고 내려온 거예요. 한 학기 동안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음악을 한 순간의 자만심으로 날려버린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이틀 뒤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했을 때에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자격지심에 빠졌다가 자만했다가 하면서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쳐서 제일 힘들었어요. 극복했던 방법은 제가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프로세스도 있겠지만, 악보를 보고 익히는 건 다르다는 걸 생각했어요. 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경거망동하지 말자고 되새겨요. ‘나도 나만의 것이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하려고 엄청 노력을 많이 해요. 연주하기 전에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차분하게 연주를 준비하는 루틴이 생겼어요. 연주를 하고 내려오면 음색이 예쁘다는 말을 들은 적이 많은데 그것이야 말로 제가 가진 아이덴티티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Q. 앞으로의 활동계획
A. 아직까지 뚜렷하게 정해진 건 없지만 음악계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획 분야에 시각을 필요로 하는 요소가 많아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누군가의 섭외만 기다리거나 정해준 커리큘럼 안에서만 하는 연주가 아니라 제 스스로 제가 하고 싶은 곡을 정하고, 연주 형태를 정하며 연주 기획을 하고 싶어요. 힘은 몇 배로 들겠지만 그만큼 제가 하는 활동에 훨씬 큰 애정을 가질 것 같아요. 그래서 기획 분야에도 더 많이 참여하고 싶습니다. 장애 예술인들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기획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그래도 꼭 장애 예술인이라서 못한다기보다는 한발 나아가서 어느 정도의 기획 단계에는 스스로 참여하면서 능동적인 예술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피아노 전공자이긴 하지만 저만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낸 자작곡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음악과 저를 일치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DATE 2023. 8. 6.
Interviewer 손세빈(SEM부트캠프 예비예술인)

"지우님과 같은 피아노 전공으로서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 시간이 한정되어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너무 즐거웠던 인터뷰였어요. 장애 예술인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건 제게 처음이었는데, 같은 예술을 하고 있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우님의 예술 세계를 전해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예비예술인 양지우님의 예술활동

L. v.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3 in C minor, Op. 37 1st 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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